몇 년 전에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유지원 교수를 팔로우하게 되었다. 타이포그래피,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소개해주시는 글을 읽고서 자연스레 그 분야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그중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이 타이포 그래피에 관한 것들이었는데, 페이스북 글이나 신문 연재분을 조금씩 찾아보는 정도로 만족하고는 했다.
그러다가 이 분이 책을 내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바로 이책을 구매했었다. 그리고는 이 책을 하루만에 다 읽게 되었다. 집중력이 뛰어나지 않은 나에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유지원은 과학자의 머리와 디자이너의 손과 시인의 마음을 가진 인문주의자다" - 영화감독 박찬욱
"마지막 책자을 덮고 나면, 이제 당신은 양식이 다른 글자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로 당신에게 말을 거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과학자 정재승
간단하게 내용을 설명하자면, 이 책은 세계 각지(유럽~아시아에 이르는 넓은 범위)의 활자들을 다룬다. 저자가 직접 걸어다니며 찍은 사진들과 쉬운 설명들은 나에게 아주 적게나마 저자의 시선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세리프와 산세리프, 고딕과 명조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에게 이 전혀 다른 세상의 지식들은 추천사의 말처럼 "다른 글자들이 다른 목소리로 말을 거는" 듯한 신기한 체험을 하게 해 주었다.
나는 무언가를 이국적이게 만드는 제일 큰 요소 중 하나가 그 나라의 '글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느 나라를 가든 그 곳의 간판들을 많이 찍고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국의 글자에 대한 흥미를 뛰어넘어 보다 깊은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아래의 간판 또한 단순히 흥미가 생겨서 사진을 찍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저자의 '홍콩에서의 한자와 로마자의 공존' 에 관한 글을 읽고 나니 위 간판이 생각났다. 저자는 홍콩에서 '각자 다움의 존중'을 사유했다고 한다. 그와 반대로 나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위 간판을 보면서 중국의 문화확장과 자본 침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실제로 러시아는 물론이고 중국과 국경을 접한 키르기스스탄 등의 ~스탄 나라에는 이미 중국자본이 진출하고 있어서 현지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고등학교 한국지리시간이 떠올랐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한다는 오래된 문구처럼 그 시절 나는 책에서 배운 지형들이 내 주변에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좋아했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통해 무심코 지나갔던 글자들의 흰 여백들, 글자들의 획 그리고 그 뒤에 숨어있는 역사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이젠 더욱더 간판에 집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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